여우야 뭐하니 , 병희와 철수
헬스클럽을 나오니 "여우야 뭐하니"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어쩌다 한번 본 프로가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아 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늘 수,목 인가 목,금 인가 하다 보니 놓치기 일수였다.
하지만 어제는 끝부분 이라도 운좋게 보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은 복강경 수술을 받은 병희가 환자복 차림으로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철수를 찾아 나서는 장면 이었다.
철수를 찾은 병희, 아픈 배를 움켜쥐고 쓰러질 듯이 철수에게 말한다.
" 철수야, 마음 가는 대로 하자."
더 이상의 사랑이 없다. 나는 병희 에게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알료사의 말을 떠올린다.
"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되죠."
주변의 논리보다 앞선 병희의 절절한 선택이었다.
또한 이 소설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는 조시마는 역설한다.
" 대지에 입맞추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사랑하라, 환희의 눈물로 대지를 적시고
그 눈물을 사랑하라. 또 그 환희를 부끄러워 말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병희의 선택은 신의 선물일까?
또한 F.피츠제럴드 스코트의 「위대한 게츠비」에서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생각할 만 하다.
위대함은 인간의 어떤 속성을 말하는가?
- 자기를 희생하여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 진정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 부, 명예, 권력에 개의치 않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사람
그러나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게츠비 에게서 위대한 속성을 찾아볼 수 는 없다.
그는 돈 때문에 떠나간 사랑을 돈으로 찾겠다는 단세포적인 발상으로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불법 축재자 였으며, 이미 흘러간 과거를 되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 비현실적 몽상가 였고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아적 낭만주의 였을뿐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책의 서두에서 위대함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게츠비가 암담한 현실속에서 아무리 미미해도 삶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의 실패에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능력, 즉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줄 아는 능력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다.
나는 게츠비 에게서 철수를 보았다.
철수의 독백 " 그런건(물질) 있다가도 없을 수 도 있고, 없다가도 ... 있을 수 있는거야 "
이것이 게츠비 같은 위대함이다.
삶속의 희망을 감지하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