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한일문화
‘花見’와 일본인
rouman
2007. 5. 2. 21:43
■ 임우진 秋田県 현청 근무 국제교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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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桜)은 ‘일본의 봄’을 상징한다. さくら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곡물의 신을 의미하는 고어 さ와 신이 머무는 장소를 의미하는 くら가 합쳐졌다는 설이다. 즉, 곡물의 신이 머무는 장소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벚꽃의 개화는 봄의 도래와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를 알려주는 신호였으니, 벚꽃에 곡물의 신이 머문다고 여겼던 것일 것이다. 현청 동료 직원들에게 ‘벚꽃’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남직원들은 술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 되면 직장에서 단체로 花見를 가는데 이 때 주로 음주가무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직원들은 이별과 만남이 떠오른다고 했다. 벚꽃 시즌인 3, 4월은 학교에서는 졸업식과 입학식, 회사에서는 인사이동이 있는 시기로,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일본 최고(最古)의 가집(歌集)인 『万葉集』에는 매화(梅)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가가 실려 있다. 이는 당시 일본이 중국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 花見의 대상이 매화에서 벚꽃으로 바뀌게 되었다.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매화나무를 벚나무로 바꿔 심고 궁정 행사에도 벚꽃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지닌 花見는 일본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봄이 되면 모든 방송과 인터넷 검색사이트, 신문, 잡지 등은 벚꽃에 관한 화제로 만발한다. 花見 특별 코너가 생기고, 벚꽃 명소와 벚꽃 여행 상품 등을 소개한다. 뉴스에서도 ‘벚꽃전선(桜前線. 전국의 벚꽃 개화 시기의 추이를 기상전선처럼 나타낸 것)’의 이동 소식을 전해준다. 벚꽃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올해의 桜前線은 오키나와는 1월 17일경, 규슈는 3월 중순부터 하순, 혼슈의 도쿄는 3월 18일, 동북지방은 4월 중순에서 5월 상순, 홋카이도의 삿포로는 5월 1일 전후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일본의 花見 풍경은 각양각색이다. 직장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 가족단위로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 친구나 애인과 함께 놀러온 사람들이 저마다 벚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낭만적인 한 때를 보낸다. 여기서 직장인들의 花見 풍경을 잠깐 소개하겠다. 일단 회사에서 花見를 가기로 결정되면 부서 직원들에게 회람을 돌려 날짜를 정하고 花見에 관한 전반을 도맡아 할 간사를 뽑는다. 대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하게 된다. 간사는 반차를 내고 낮부터 나가서 花見 장소를 물색한다. 좋은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깔고 술과 안주 등을 준비해둔다. 저녁무렵이 되면 퇴근하고 온 직원들이 빙 둘러앉아 건배를 외치며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친목을 다진다. 花見 자리를 잡는 것을 ‘場所取り’라고 하는데, 영업사원의 경우 좋은 자리를 잡았는지의 여부가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중요시된다. 사실 필자는 일본에 오기 전에는 일본인은 모두 전혀 놀 줄 모르는 일벌레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에서 생활해 보니, 일할 때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여가시간은 철저히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이면 花見, 여름이면 祭り(마쓰리)와 花火(불꽃놀이), 가을이면 紅葉狩り(단풍놀이), 겨울이면 온천과 스키를 즐긴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된 데에는, 주5일 근무제(週5日勤務制)와 해피먼데이법(ハッピーマンデー法)의 시행이 큰 몫을 했다. 해피먼데이법이란, 국민의 여가 생활 보장을 위해 몇몇 국경일을 월요일로 개정해 토, 일, 월 사흘을 연속해서 쉴 수 있는 ‘三連休’를 늘린 법안이다. ‘성인의 날’(1월 15일)과 ‘체육의 날’(10월 10일)이 2000년부터 각각 1월과 10월의 둘째주 월요일로 변경되었고, 2003년부터는 ‘바다의 날’(7월 20일)과 ‘경로의 날’(9월 15일)도 각각 7월과 9월의 셋째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또, 봄철의 황금연휴(ゴールデンウイーク. 자연의 날, 헌법기념일, 국민의 날, 어린이날 등의 몰려 있는 기간)와 연말연시에는 유급휴가 등을 잘 활용하면 열흘 이상씩, 그야말로 황금 같은 휴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0년 이상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긴 유급휴가를 내기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