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한일문화
마음의 배리어프리
rouman
2007. 5. 6. 01:54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회 마음의 배리어프리 | |||||||||||||
■ 이재호 京都大学 人間環境研究科에서 일본어학 및 이론언어학 박사과정 중 | |||||||||||||
![]() | |||||||||||||
무엇이 여주인공을 우울하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대부분의 健常者(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가 있는지조차도 모른 채 지나가버리는 10센티미터 남짓한 건물 출입구의 뭝뜼(턱)이다. 우리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이 10센티미터의 턱이 휠체어 이용자인 여주인공에게는 거대한 장벽으로 돌변해버린 것이다. 「ビューティフルライフ」의 방영은 휠체어 이용자의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일본인들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요즘 들어 일본의 매스컴뿐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까지 バリアフリー(Barrier-Free. 배리어프리) 또는 ユニバーサルデザイン(Universal design)이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배리어프리란 말 그대로 バリア(Barrier. 장벽)를 제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물이 없는 밝고 쾌적한 사회 만들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활동의 1차적인 대상은 신체장애인이 되며 일본의 경우 NPO 등의 비영리활동 법인이 배리어프리의 파수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위의 몇 가지 사례가 말해주 듯 배리어프리로 불리는 대부분의 시설은 사실 健常者의 입장에서 볼 때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는 것들이다. 한 예로 교토의 시내버스 중에는 超低床リフトつきバス(저상버스)라 하여 휠체어 이용자나 노약자를 위한 버스가 있다. 이 버스는 일반 버스에 비해 승강구의 위치가 낮으며 휠체어용 리프트가 장착되어 있는 덕분에 휠체어 이용자 또한 버스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健常者에 있어 이 버스의 특별함을 실감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나 자신만 해도 超低床リフトつきバス이건 일반 버스이건 이용하는 데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먼저 오는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배리어프리의 또 하나의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진정한 배리어프리는 「みんなにやさしい社会(모두에게 친절한 사회)」 즉, 신체장애인들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에게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꼬집어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일본의 배리어프리를 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단순한 물질적 차이로 환원할 수 없는 우리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도쿄에서의 대학시절 여자친구와 신주쿠(新宿)에 쇼핑을 갔을 때 일이다. 장소가 장소인 탓에 많은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그 와중에 때마침 급한 용무(?)가 생겨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 또한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서기 좋아하는 일본인이 화장실 밖까지 긴 줄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줄을 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조금 망설였지만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하여 줄을 서기로 했다. 줄을 따라 한 발짝 한 발짝 화장실로 전진해갔다. 그리고 드디어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화장실 안에는 총 3개의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실제로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은 두번째와 세번째의 2개뿐이었다. 이상하다. 왜 첫번째 소변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일까. 입구 쪽이라(사용빈도가 높아) 유별나게 더러운 것일까. 아니면 밖에서 보일까봐 꺼려하는 것일까. 제아무리 줄서기 좋아하는 일본인이라지만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진상을 확인하고자 용기를 내어 슬금슬금 문제의 소변기에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 무사히 용무를 마쳤다. 결국 첫번째 소변기는 팔걸이 보조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 이 외에 나머지 2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많은 일본인들이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 선천성 사지절단이라는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정신력 하나로 장애인의 이미지를 혁신한 『오체불만족(五体不満足)』의 작가 오토타케 히로타다(乙武広匡)이다. 그의 존재는 누가 보아도 분명히 특별하다. 그러나 그가 특별한 것은 손발이 없는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또 유복한 가정에 훌륭한 부모, 뛰어난 지성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특별한 것은 「障害も個性の一つである(장애도 하나의 개성)」라는 사고의 전환을 우리에게 호소하였으며 그것을 몸소 실천한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 속에 이런 문구가 있다. 「障害は不便なものです。でも、悲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장애는 불편한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일은 아닙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거리에서도 장애인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나 松葉杖(목발)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 눈이 안 보여서 盲導犬(맹도견)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 우리가 이들을 대할 때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특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かわいそう(불쌍하다. 가엽다)」, 「悲しそう(슬프겠다)」, 「辛そう(괴롭겠다)」라는 시각으로 이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TV캐스터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까지 활약하고 있는 오토타케의 경우에는 우수한 학력과 물질적 풍요 또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로 작용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성공 배경에는 주변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배리어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공시설의 물질적인 정비나 시설 또한 배리어 프리의 중요한 측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우리들 모두의 사랑과 배려, 서로가 서로를 돕는 마음 자세, 즉 「心のバリアフリー(마음의 배리어 프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배리어 프리일 것이다. 약간의 발상의 전환과 심적 여유를 가진다면 「心のバリアフリー」는 그리 힘든 것이 아니다. 만약 명동의 유명 백화점에서 신주쿠 백화점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과연 장애인용 소변기는 어떻게 될까. 「あなたは並びますか。心のバリアフリーが実践できますか。(당신은 줄을 섭니까? 마음의 배리어 프리를 실천할 수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