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은 자각과 분투로 정복하는 자유의 고원이다.

일문학이야기

라쇼몽(羅生門)芥川竜之介

rouman 2006. 9. 22. 00:48
 

ある日の暮方の事である。一人の下人が、羅生門の下で雨やみを待っていた。

広い門の下には、この男の外に誰もいない。唯、所々丹塗の剥げた、大きな円柱に、蟋蟀が一匹とまっている。羅生門が朱雀大路にある以上は、この男の外にも、雨やみをする市女笠(いちめがさ)や揉烏帽子が、もう二三人はありそうなものである。それが、この男の外には誰もいない。

何故かと云うと、この二三年、京都には、地震とか辻風とか火事とか饑饉とか云う災がつづいて起った。そこで洛中のさびれ方は一通りではない。旧記によると、仏像や仏具を打砕いて、その丹がついたり、金銀の箔がついたりした木を、路ばたにつみ重ねて、薪の料に売っていたと云う事である。洛中がその始末であるから、羅生門の修理などは、元より誰も捨てて顧る者がなかった。するとその荒れ果てたのをよい事にして、狐狸が棲む。盗人が棲む。とうとうしまいには、引取り手のない死人を、この門へ持って來て、棄てて行くと云う習慣さえ出來た。そこで、日の目が見えなくなると、誰でも気味を悪るがって、この門の近所へは足ぶみをしない事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その代り又鴉が何処からか、たくさん集って來た。昼間見ると、その鴉が何羽となく輪を描いて、高い鴟尾のまわりを啼きながら、飛びまわっている。殊に門の上の空が、夕焼けであかくなる時には、それが胡麻をまいたようにはっきり見えた。鴉は、勿論、門の上にある死人の肉を、啄みに來るのである。――尤も今日は、刻限が遅いせいか、一羽も見えない。唯、所々、崩れかかった、そうしてその崩れ目に長い草のはえた石段の上に、鴉の糞が、点々と白くこびりついているのが見える。下人は七段ある石段の一番上の段に、洗いざらした紺の襖の尻を据えて、右の頬に出來た、大きな面皰を気にしながら、ぼんやり、雨のふるのを眺めていた。(『羅生門』)

 

어느 날 저녁 무렵의 일이다. 하인 하나가 라쇼몽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문 아래에는 이 남자밖에 아무도 없다. 단지 곳곳에 붉은 칠이 벗겨진 커다란 기둥에 귀뚜라미가 한 마리 붙어 있다. 라쇼몽이 주작 대로에 있는 이상은 이 남자 이외에도 비를 피하는 삿갓 쓴 여자나, 건을 쓴 남자가 두셋은 더 있을 법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요 이삼 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이나 돌개바람, 화재, 기근 같은 재해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래서 도성의 황폐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불상이며 불구를 때려부수어, 그 붉은 색이 묻어 있거나 금박 은박이 묻은 나무를 길거리에 쌓아두고 장작거리로 팔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성 안이 그런 지경이었으니 라쇼몽의 수리 따위는 애초부터 누구 하나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그 황폐해진 것을 틈타 여우와 너구리가 깃들고 도둑이 거처를 삼았다. 드디어 심지어는 떠맡을 인척이 없는 죽은 사람을 이 문에 가져와서 버리고 가는 관습마저 생겼다. 그래서 해가 지고 나면 누구나 께름칙하게 여겨, 이 문 근처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신에 또 까마귀가 어디서인지 많이 몰려왔다. 낮에 보면 그 까마귀들이 몇 마리나 원을 그리며 높은 망새 주위를 울면서 날아다닌다. 특히 문 위의 하늘이 저녁 노을로 벌겋게 물들 때에는 그것이 깨를 뿌린 듯이 선명하게 보였다. 까마귀는 물론 문 위에 있는 죽은 시체를 쪼아먹으러 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시간이 늦은 탓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곳곳에 허물어진, 그래서 그 갈라진 틈새에 긴 풀이 자라난 돌계단 위에 까마귀의 똥이 점점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하인은 일곱 단이 있는 돌계단의 맨 위에 자주 빨아서 색이 바랜 감색 겹옷의 엉덩이를 걸치고, 오른쪽 뺨에 생긴 커다란 여드름을 걱정하면서 멍하니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쇼몽』)


 

줄거리


▲ 소설『톱니바퀴』의 친필 원고


헤이안 시대 말(12세기)에는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무사계급이 대두하고 교토의 귀족층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풍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인하여 도읍인 교토는 서서히 황폐해져 갔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인은 이러한 교토의 정문인 라쇼몽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서 있다.

하인은 사실 비가 그쳐도 특별히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주인집에서는 4, 5일 전에 휴가를 받았지만, 나가라는 소리를 들은 거나 마찬가지라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인은 우선 당장 내일의 생계를 해결할 일이 막막했던 것이다. 하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길바닥에서 객사하기 십상이었으므로 도둑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행할 용기는 없었다.

그러다가 하인은 누각의 이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버려진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발견했다. 하인은 칼을 뽑아 위협하면서 노파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죽은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판다고 했다. 그리고 노파는 죽은 사람들도 먹고살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다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변명한다. 또한 노파는 악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악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서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인은 비로소 자신도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도둑질은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폭하게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나 버린다.


 

작자


▲ 34세의 아쿠타가와와 그의 가족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는 1892년 도쿄 태생으로 1927년 만35세에 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 東京大学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던 1915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문하에 들어가 「목요회」(木曜会)에 참가했으며,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기쿠치 칸(菊池寛) 등과 함께 제 3․4차 「新思潮」의 동인이 되었다. 1915년의 『라쇼몽』(羅生門)에 이어서 제4차 「新思潮」에 발표한 『코』(鼻, 1916)는 나쓰메 소세키의 격찬을 받고, 같은 해에 『고구마죽』(芋粥), 『손수건』(手巾)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초기에는 『곤자쿠 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등의 고전 설화집에서 소재를 구한 역사소설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에 근대적 해석을 가미하여 역설적인 인간상을 기교적으로 그렸다. 중기에는 『희작삼매』(戯作三昧, 1917), 『지옥변』(地獄変, 1918) 등에서 작가나 화가 등의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현학산방』(玄鶴山房, 1927), 『갓파』(河童, 1927) 등에서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가는 인간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톱니바퀴』(歯車, 1927), 『어떤 바보의 일생』(或阿呆の一生, 1927), 『서방의 사람』(西方の人, 1927) 등에서는 근대적 자아의 한계와 파탄을 느끼고 있는 그의 정신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아쿠타가와는 흔히 예술지상주의 혹은 신현실주의, 신기교파 등의 작가로 불린다.


▲ 아쿠타가와의 서재 아쿠타가와는 동서고금의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당대 단편소설 창작의 제1인자였으나, 정신쇠약과 체력의 한계, 장래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ぼんやりした不安)으로 1927년 7월 2일 음독 자살을 하였다. 芥川賞는 1935년 文芸春秋社를 창간한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념하여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서 수상작은 잡지 『文芸春秋』에 게재된다. 이 상은 매년 2회 순문학의 신인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는데, 재일 동포 작가로는 이회성이 『다듬이질하는 여인』(砧をうつ女, 1971)으로, 이양지가 『유희』(由煕, 1988)로, 유미리가 『가족 시네마』(家族シネマ, 1996)로 각각 수상한 바 있다.



 

일본어저널 2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