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은 자각과 분투로 정복하는 자유의 고원이다.

일본 문화/한일문화

누구에게 돈을 빌립니까?

rouman 2007. 5. 2. 21:31
 


필자가 한국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행동양식의 차이 등을 읽어보며 일본인과 보다 원만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斎藤明美 한림대학교 교수

한일 젊은이들의 언어행동에 대해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일본인 선생님이 조사를 위해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저녁 무렵 호텔 복도에서 그날 쓴 돈을 정산하고 있는 듯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점심의 된장찌개는 오야마 선생님이 내주셨잖아요. 네, 4천 원. 택시비는 누가 냈죠? 세 명이서 탔으니 한 명에 2천500원이죠.」
「됐어요, 그 정도는.」
「안 돼요. 정확하게 해야죠.」
「이런 자잘한 계산까지 하는 일본인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분명 질려버릴 거예요.」
최근의 한국 젊은이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분명 한국과 일본은 더치페이나 돈을 걷어서 내는 것에 대한 사고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이와 함께 돈을 빌리거나 일자리를 부탁할 때의 모습도 다르다.
저녁을 먹을 때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국인은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쉽게 해요.」
「네,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고, 만약 빌려주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며 그 이후의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죠.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일본에서는 부모에게도 돈은 안 빌려요. 저 또한 부모에게 돈을 빌려 스키장이나 여행을 갈 정도라면 안 가고 말죠.」
하고 일본 대학의 선생님들이 말했다. 그러자,
「우리들이 젊었을 때는 데이트가 있으면 친구에게 옷을 빌려서 입고 나갔죠. 때로는 칫솔도요.」
하고 한국인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분명 일본에서는 연필이나 볼펜 같은 조그마한 물건은 쉽게 빌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큰 돈 등은 친구나 친척에게도 부탁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때문에 때로는 질이 나쁜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린 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자살로 내몰리는 경우까지 생기기조차 한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은 친구나 친척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실제로 빌리지는 못 해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다. 물론 일본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까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화(和)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육을 한다. 가령,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친구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하고 가르치는데, 서로 싸우거나 폐를 끼치기도 하면서 사이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남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폐를 끼치는 부탁이나 돈을 빌리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싸우지 않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희박해지기 쉽다. 또한 의뢰를 할 경우에는 「恐れ入りますが(죄송합니다만)」, 「申し訳ございませんが(죄송합니다만)」, 「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이라고 하며 부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부탁하게 되면, 가령, 소개해준 일자리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사람의 얼굴을 봐서 무턱대고 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도 지금까지 학생들을 위해 지인에게 여러 차례 억지로 일자리를 부탁한 경우가 있는데, 더욱 좋은 직장이 있다며 취업이 결정되어도 출근하지 않거나 회사에 나가도 아무 말도 없이 그만두는 학생이 있다. 물론 이런 학생이 많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정말 무책임한 학생이잖아. 억지까지 쓰며 힘들게 부탁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을 소개한 사람의 얼굴을 봐서 「石の上にも三年(고진감래)」 하며 억지로 참고 있는 것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더욱 중요시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늘 이용하고 있는 역 매점의 아주머니는 나를 보면 종종 「이번에는 언제 일본에 가요? 일본에 가면 우메보시 사다 줄래요?」 하고 말한다.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도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 해 요즘에는 내가 먼저 「이번에는 꼭 우메보시 사올게요.」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면 아주머니는 「부탁해요.」 하며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