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은 자각과 분투로 정복하는 자유의 고원이다.

일본 문화/한일문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국민성의 차이

rouman 2007. 5. 2. 21:36

-하나의 단어에 두 가지 뜻이?-

필자가 한국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행동양식의 차이 등을 읽어보며 일본인과 보다 원만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斎藤明美 한림대학교 교수

말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인다. 필요한 말은 자주 쓰며 다소 어려운 한자여도 정확하게 읽고 쓸 수 있다. 가령 「薔薇(장미)」라는 글자는 반드시 한자로 써야 한다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못 쓰는 사람도 많은 반면, 「容姿(용모와 몸매)」라는 한자는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중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중고생이 「容姿」에 강한 흥미 또는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누(アイヌ) 사람들은 곰발바닥의 일부를 나타내는 어휘를 가지고 있다. 곰은 벌꿀을 발바닥으로 찍어 먹기 때문에 발바닥이 있는 부분은 달고 특히 맛있어 이를 나타낼 단어의 필요성을 느껴 만들었다고 한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온 「哲学(철학)」, 「心理学(심리학)」 같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양의 학문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그 학문과 함께 이를 나타내는 말이 필요해져 새로운 말이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하나의 의미를 두 가지 말로 표현하는데 한국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만을 이용하는 예가 몇몇 있다. 가령 「飲む(마시다)·食べる(먹다)」, 「見る(보다)·会う(만나다)」, 「座る(앉다)·とまる(앉다)」, 「やる(주다)·くれる(주다)」 등이 그것이다.
일본어에서는 「酒を飲む(술을 마시다)」라고 하며 「酒を食べる」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어에도 「飲む」에 해당하는 「마시다」라는 단어가 있지만 「술을 먹다」라고 쓰는 사람도 많다. 또한 일본어에서는 어떤 약이든 「薬を飲む」라고 하며 「薬を食べる」라고는 하지 않는데, 한국어에서는 알약, 가루약, 물약 모두 「薬を食べる」라는 의미의 「먹다」라는 단어를 쓴다. 이러한 점이 일본인인 나에게는 재미가 있다. 「見る」와 「会う」도 마찬가지. 「母に会う」라고 할 때 한국어에서는 「보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때때로 「母を見たいです」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다. 「見る」나 「会う」 모두 눈으로 상대방을 인식한다는 행위 자체는 같지만 일본어에서는 단순히 일방적으로 보는 것과 서로 만나서 인식하는 것을 다른 단어로 나누어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어에도 「만나다」라는 단어가 있지만 「母に会う」의 경우에는 「보다」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座る」와 「とまる」라는 말에 대해서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본어에서는 사람이 앉을 경우는 「座る」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どうぞ、とまってください」, 「さあ、とまって」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鳥が木の枝に座っています」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 「앉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거론한 「飲む·食べる」, 「見る·会う」, 「座る·とまる」 등은 서로 같은 행위이고 각각이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네 번째에 거론한 「やる·くれる」에 대해서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일본어의 「やる」는 다른 사람(또는 동물)에게 물건을 건네는 것이고 「くれる」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에게 물건이 오는 것이어서 물건의 진행 방향이 반대가 된다. 그럼에도 한국어에서는 「주다」라는 하나의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어 학습자가 혼란을 일으켜,
「先生は私に辞書をあげました。」
「私は父母の日に、母にカーネーションをくれました。」
하고 잘못 쓰게 되는 일이 생긴다.
지금까지 든 예를 보면 한국어는 일본어보다도 사람이나 동물, 물건의 구별이 없고, 그래서인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대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가령, 「食べる」나 「飲む」 모두 똑같이 음식물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는 현상이고, 「見る」나 「会う」 모두 눈으로 인식, 확인한다는 의미에 있어서는 같은 행위이다. 그리고 「座る」나 「とまる」도 사람과 동물의 차이이긴 하나 분명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이들 하나하나를 구별하여 쓰고 있다.
마지막에 거론한 「やる」와 「くれる」에 이르러서는 일본인은 어떤 것을 받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받은 순간에 감사를 해야겠다 답례를 해야겠다 하는, 부수적인 다른 행위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やる」와 「くれる」는 같은 표현이 되지 않으며, 그 후의 언어 행위에도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어의 「주다」는 주고받는 물건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행위이고 자신이 주어가 될 때는 「やる」의 뜻이 되고 간접목적어가 될 때는 「くれる」의 뜻이 되어 의미를 잘못 인식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처럼 말에 따라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민성의 차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재미있다. 하지만 이들은 현대어의 공통어만을 본 경우. 조금 옛날로 돌아가보면 일본어의 「食う(먹다)」도 사서(史書) 「大鏡」에서는 약 등을 삼키는 뜻으로도 쓰였고 「くれる」도 「くれてやる」 같은 형태로 자신이 상대방에게 물건을 주는 행위로 쓰이는 일도 있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을 더욱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어 재미있다.

'일본 문화 > 한일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색 옷을 입나요?  (0) 2007.05.02
일본의 지역색깔  (0) 2007.05.02
ヨン様が好きですか?  (0) 2007.05.02
누구에게 돈을 빌립니까?  (0) 2007.05.02
일본인의 힘의 원천, 마쓰리  (0) 2007.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