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위한 기도(109:14~20)
악인은 대체로 하나님의 존재와 공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인식한다면 이와 같은 언어 폭력을 휘두를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악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악이 항상 하나님의 판단 앞에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14, 15절). 악인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16절). 여기서 악인은 힘과 능력을 가진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힘과 능력을 주신 이유는 약한 자들을 돌보라는 것인데, 그는 오히려 연약한 자들 위에 군림한 것입니다. 또한 악인은 저주하기를 즐겨하는 자들이었습니다(18절). 악인의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권위와 능력으로 약자들을 돌보지 않고 언어 폭력으로 약한 자들을 굴복시키려 한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입술로 폭언을 함으로써 남을 제압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내 언어 생활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의롭습니까?
자신을 위한 기도(109:21~31)
언어 폭력으로 인해 죽음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남은 우리의 희망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찢겨진 심령을 꿰매시고,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대하시며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21절). 그는 금식함으로 수척한 육체, 온갖 비방 속에서 견딜 수 없이 찢겨진 심정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며 구원을 요청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30절). 그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갖 비방과 조롱을 이겨내신 예수님께 승리의 비결을 배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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