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연어
▶알을 낳고 기진한 연어는 허옇게 죽어 널브러진다. 그 위로 겨울이 온다.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때마다 강은 쩡쩡 소리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는 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안도현 ‘연어’).
▶그리고 봄이 온다. ‘보리밭에 보리싹이 올라오듯, 그 알 속에서 귀여운 연어새끼들이 깨어나 꼬리를 흔들면서 산에서 머리를 신삭(新削·갓 깎음)한 사람처럼 꼬물꼬물 겨울의 두께를 뚫고 돌과 자갈 틈바구니로 하나 둘씩 짝을 지어 물 속으로 올라온다’(고형렬 ‘은빛 물고기’). 새끼들은 곧장 바다로 나가지 않고 강에서 한 달 보름을 머물며 어미의 냄새를 몸에 새긴다. 무섭도록 아름다운 업(業)이다.
▶몇 해 전 늦가을 전남 광양의 간전면으로 건너가는 섬진강 다리 아래에서 낚시꾼이 귀한 손님을 잡아올렸다. 동해안에만 오던 연어였다. 섬진강에서 사라진 지 30년 된 그 연어였다. 희망을 본 남도 사람들은 양양에서 새끼 연어를 얻어다 1998년 방류를 시작했다. 3년 뒤 18마리가 돌아온 이래 해마다 늘던 연어가 올가을엔 벌써 200마리 넘게 왔다. 하구의 그물들을 줄이고 수중보를 뚫어 어도(魚道)를 내고 강물을 깨끗하게 지킨 덕분이다.
▶하고많은 강 중에 섬진강은 이름부터 괜히 애잔하다. 민초들의 짠하고 질긴 생명력을 떠올린다. 김용택이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른다’고 한 섬진강이다. 그 섬진강이 다시 어머니의 강이 됐다. 모성을 되살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힘차게 거슬러 오는 새 생명들을 얻었다. 떠나는 3월 연어를 강변에 흐드러진 매화·산수유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11월 연어를 불놀이 같은 지리산 단풍으로 마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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