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s Rouault 루오 -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 2006. 5. 4 ~ 8. 27
루오전을 보았다. 그의 그림의 거의 모든 주제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내면을 그렇듯 다양하고 리얼하게 끌어냈다는 것이 놀랍고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의 부족한 표현력으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 대신해 준 것 같았기에. 그의 그림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명만으로도 이미 족한 느낌이다. 그 그림의 제목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의 해학과 풍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의 제목들을 다시 한번 옮겨 보기로 했다. 제목 자체로도 나는 유쾌하다. <부촌의 마님은 천국을 마치 예약된 자리처럼 믿는다> <···그의 변호사는, 공허한 문장들로, 그의 전적인 무죄를 주장한다···> <마음이 숭고할수록, 목은 덜 뻣뻣하다> ......
한여름 소나기 같은 제목들이다.
총 네 개의 전시실인데 그림은 3전시실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제1전시실은 초년기와 방황기로 우울하다. 그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다. 그의 작품 속 인간들은 주로 광대, 매춘부, 빈민촌사람들, 예수로 1전시실에는 36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광대도 <우울한 광대>이다. <법정>은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위악적인 모습으로 판사들을 그렸고, <피고>에서는 누가 재판을 하고 재판을 받는 사람인지 대상이 명확하지가 않게 그려져 있다. 왜 그러한 것일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하는 의문은 1전시실 마지막 작품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닌가요?>에서 해답을 구했다.
<긴 고통의 빈민촌>(어머니와 아이들)에서는 현실의 인물을 통해 종교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고통을 조용히 받아들여 감내하고 더 나아가서는 극복의 메시지까지도 전하고 있었다. 두 아이들을 선채로 껴안고 고개 숙인 모습에서는 숙연함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2전시실은 《위비영감의 재림》,《회상록》, 《서커스》, 《유성서커스단》, 《악의 꽃》으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위비영감의 재림》은 판화집이다. 이 연작에서는 선생이나 부자들의 용렬함을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또 하나의 주제로 혹사당하면서 비참하게 살면서도 선량함이 담겨 있는 흑인가족을 그리고 있다. 《서커스》, 《유성서커스단》, 《악의 꽃》의 주제도 마찬가지로 곡예사와 광대, 판사 매춘부들이다. 루오는 이들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이들이라고 여겼다. 루오는 이들을 통해 인생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지만 따뜻한 인간애로서 이들을 품고 있다. 항상 타인의 웃음을 사기 위해 몸을 우스꽝스럽게 움직여야하는 운명, 몸을 팔아야 사는 운명들에 끝없는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애정은 맑은 눈, 둥글고 어진 얼굴, 부드럽고 두터운 검은 선으로 그림에 나타났다. 루오는 곡마단 소녀를 성모 마리아처럼 그렸고, 인간을 심판하는 법정의 판사와 검사를 우스꽝스런 존재로 표현했다. 루오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미제레레' 연작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있었다 그 속에 우리 사는 일이 다 녹아 있었다. 몇 가지만 들어본다면,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닙니까〉
-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 누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부촌의 마님은 천국을 마치 예약된 자리처럼 믿는다>
- 부 자체가 천국 티켓의 조건의 될 수는 없는 일. 경주 최 부잣집이라면 모르지.
- 부자가 이렇게 비유되지 않을 날이 오기를 절실히 바란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미덕을 기다리며
<···그의 변호사는, 공허한 문장들로, 그의 전적인 무죄를 주장한다···>
-공허한 문장들이 아닌 책임감 있는 진실한 언어들로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도 천국은 예약되지 않는다. 천국도 공허한 말로 남을 뿐.
<마음이 숭고할수록, 목은 덜 뻣뻣하다>
- 이 그림은 오만의 대표적인 그림일 듯. 목은 하늘을 향하고 숭고함은 땅바닥이다.
- 오만에 불쾌하고 오만의 적절한 묘사에 유쾌하다.
〈산다는 힘든 직업...〉
-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힘든 직업인 삶도 있다.
〈서로 서로를 사랑하시오〉
- 용서와 사랑은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일이다.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 나도 이제는 어머니 마음을 알 것 같다.
〈기쁨이라 불리는 여인〉
- 나도 기쁨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인간은 늑대이다〉
- 왜 인간은 늑대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하게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있고 늑대
가 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의 의미가 밝지는 않다. 늑대인간이구나. 보름달 뜨면 늑대로
변하는 인간. 내 나름의 해석은 이중적인 내면의 인간을 그린 것이라 보았다.
〈때때로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했다〉
-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이다. 서로 서로를 사랑하자.
〈가장 좋은 직업은 척박한 땅에 씨 뿌리는 것〉
- 어렵고 힘들지만 척박함을 일구는 것, 고통을 이겨내는 것. 이것이 루오가 추구하는 것.
〈악법도 법이다〉
-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질서.
이만하면 이제 루오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충분히 파악할 만하다.
3전시실은 수난을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고통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자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루오가 그려내는 인간의 고귀함은 고통 한 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고귀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석가의 얼굴도, 고통을 감내하는 세상 모든 얼굴도 중첩되어 있었다. 인내하는 것은 고귀함이었다. 인내하지 못했던 삶들에 대해서 부끄러운 반성으로 화끈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베로니카》앞에서 나는 드디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인생의 명제에 대한 답을 구했다. 베로니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베로니카는 내 가치관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아직까지 본적이 없다. 푸른색 배경 속의 베로니카는 모든 것을 초월한 지상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종교적인 엄숙함 속에 무한한 자애가 느껴지는 그런 선한 눈의 베로니카를 본 것은 최고의 기쁨이면서 최고의 설렘이었다. 루오의 마지막 걸작인 《사라》를 마지막으로 전시실을 나오면서 나에게 까지 이러한 흥분을 제공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8월 27일 끝난다니 서운한 느낌이 든다. 세 번을 보았지만 다시 또 그리워진다. 베로나카를 다시 보아야할 것 같다. 내 생애 다시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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