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은 자각과 분투로 정복하는 자유의 고원이다.

일문학이야기

무희(舞姫) - 森鴎外(もりおうがい)

rouman 2007. 5. 2. 03:28
 

<줄거리>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란 주인공 오타 도요타로는 대학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모 부처의 관리가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도요타로는 그 동안 고생한 홀어머니를 3년 정도 행복하게 모시다가 다시 독일로 국비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덧 베를린에서 유학생활도 3년째, 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에도 독립적인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고, 법과의 강의보다는 점점 역사와 문학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도요타로는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장례비용이 없어 슬퍼하고 있는 무희 에리스를 돕게 된다. 이 후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교제를 하게 되는데, 평소 도요타로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던 친구들은 이를 모함하여 장관에게 보고함으로써 관직을 파면 당하게 한다. 도요타로에게 또 한가지 비통한 일은 고향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두 사람은 더욱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도요타로는 에리스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생활비는 친구인 아이자와(相沢)의 소개로 신문사 통신원을 하면서 겨우 꾸려나간다.

2년 동안 가난하지만 꿈같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된다. 그 해 겨울 에리스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직후, 도요타로는 대신인 아마가타(天方) 백작을 동행하여 베를린에 온 친구 아이자와를 만나게 된다. 아이자와가 도요타로에게 에리스와의 관계를 청산하라고 하자, 도요타로는 그러마 약속한다. 이후 도요타로는 아이자와의 추천으로 통역과 번역 등 백작을 돕게 되고 백작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일본으로 데려가려 한다. 이에 도요타로는 귀국(입신출세)이냐, 사랑이냐의 선택을 놓고 수없이 고민하다 발병하여 수주일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그가 깨어났을 때, 아이자와로부터 모든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은 에리스가 이번에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발광하게 된다. 도요타로는 산송장과 같은 에리스를 보며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은 귀국 길에 오르게 된다.

 

작자


▲모리오가이


모리 오가이(森鴎外)는 1862년, 이와미(石見国, 현 島根県 서부)에서 태어나 군의관(軍医官)을 본업으로 하면서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시인, 극작가 등으로 활약한 일본 근대의 선각자이다. 본명은 린타로(林太郎)이며 집안은 대대로 쓰와노한(津和野藩)의 전의(典医)였다. 오가이는 어린 시절 쓰와노에서 한학을 배운 후, 1872년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니시 아마네(西周) 집에서 기숙하며 독일어를 배웠다.

1881년에는 동경대학 의학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이 된다. 1884년 육군의 위생제도를 조사하고 위생학의 연구를 위해 독일에 유학하여, 1888년 9월, 5년에 걸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게 된다. 이 때 에리제로 추측되는 한 독일 여성이 오가이를 따라 일본에 왔고, 온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설득하여 돌려보냈다고 한다. 오가이는 다음해 3월 해군중장 아카마쓰 노리요시(赤松則良)의 딸 도시코(登志子)와 결혼한다.

귀국후 그는 군의관으로만이 아니라 문학면에서도 선구적 계몽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서정적인 역시집 『오모카게(於母影, 1899)』를 발표하고, 독일 유학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무희(舞姫, 1890), 『덧없는 기록(うたかたの記, 1890)』, 『전령(文づかひ, 1891)』을 발표하였다. 이 세 작품으로 오가이는 소설가로서 지위를 굳히고 일본문단에 낭만주의를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모리오가이의 유언 원본이후 오가이는 1907년 45세에 육군군의총감, 의무국장으로 승진하여 군의관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되지만, 작가로서는 한동안 창작활동보다 번역과 문학논쟁을 즐겨했다. 1909년 문예잡지 『스바루(スバル)』 창간과 함께 『반일(半日, 1909)』, 『이타․섹슈얼리스(ヰタ․セクスアリス, 1909)』, 『청년(青年, 1910-11)』, 『기러기(雁, 1911-13)』, 『망상(妄想, 1911)』 등의 장편(掌篇)․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1912년 명치 천황의 죽음에 따라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순사 사건 이후에는 『오키쓰야고에몬의 유서(興津弥五右衛門の遺書, 1912)』를 시작으로 『아베 일족(阿部一族, 1913)』, 『산쇼다유(山椒大夫, 1915)』, 『다카세부네(高瀬舟, 1916)』 등의 역사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시부에추사이(渋江抽斎, 1916)』와 같은 사전(史伝) 소설도 발표했다. 모리 오가이는 1922년 폐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본업인 군의관으로서 일본 근대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와 함께 근대 일본문학의 거봉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