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유학중인 정미숙 씨는 친구의 소개로 스즈키 아키라(鈴木明) 씨를 알게 되었다. 스즈키 씨는 직장인인데, 어느날 정미숙 씨에게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フレンチ(French.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勘定(계산)’를 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정미숙 씨는 어떻게 할까? 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①스즈키 씨가 돈을 낼(払う) 테니까 나는 내지 않는다.
②스즈키 씨와 반씩 ‘割り勘(더치페이. 각자 부담)’ 한다.
③스즈키 씨에게 돈을 전부 내게 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니 나도 얼마 낸다.
이 질문에 대한 한국 유학생들의 대답은 ①, ②, ③으로 나뉘었는데, 가장 많았던 것은 ② ‘반씩 더치페이 한다’였다. 그 이유로는 ‘일본에서는 더치페이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서로 부담이 안 돼서 마음이 편하니까’ 등을 들었다.
또, ‘일단은 더치페이를 생각하겠지만, 상대방이 사겠다(おごる)고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더치페이 하겠다. 하지만 친한 사이라면 얻어먹을 수도 있다’는 대답도 있었다. 친한 정도에 따라 계산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다음으로 많았던 대답은 ①이었는데, 그 이유로는 ‘스즈키 씨는 남자이고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까’, ‘스즈키 씨는 직장인이라서 유학생인 정미숙 씨보다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것이니 스즈키 씨가 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③을 선택한 유학생들은 ‘한국에서는 남자가 내는 것이 보통이기는 하지만, 전액을 혼자 내게 하는 것은 미안하니까. 그리고 나도 얼마 정도 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라는 이유를 들었다.
남학생에게는 유학생을 남성으로, 상대방을 직장인 여성으로 설정을 바꿔서 질문했는데 ‘상대방이 여자니까 자신이 다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많았고,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얻어먹어도 상관없다’, ‘서로 마음 편하게 더치페이 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답변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일본에서는 더치페이가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남자가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돈을 내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해설 -
한국에서는 만나자고 한 사람,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식사 등을 함께 하자고 한 경우에는 보통 남자가 돈을 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경우처럼 상대 남자가 연상이고 사회인이라면 아마 여자는 남자가 사주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단, 유학생이 남성이고 상대방이 연상이거나 사회인 여성인 경우, 혹은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인 관계도 아니고 별로 친하지 않은 경우처럼, 상대방과의 관계나 친한 정도가 약하면 더치페이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동성끼리라면 어느쪽이 먼저 만나자고 했든 더치페이를 하겠다고 답한 학생도 있었는데, 이와 같이 한국에서도 젊은층에서는 부담이 되지 않고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더치페이도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자신이 사주겠다고 말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만나자고 한 사람이 꼭 돈을 다 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직장 상사이거나 연상의 사회인인 경우에는 돈을 많이 내거나 사주기도 하지만, 사주는 쪽은 금전적으로, 얻어먹는 쪽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더치페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람들이 더치페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해도, 금액을 사람 수대로 동전까지 정확하게 나누어 ‘レジ(カウンター, 계산대)’앞에서 모아서 내는 일본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알고 지내는 일본사람이 한국에 왔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사람은 외국에서 온 손님이므로 본인이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하지만 일본 손님은 일본식으로 더치페이를 고집한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기껏 베풀려고 한 호의를 거절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밥을 사주었으면 식사 후 차 값은 자신이 낸다든지, 다음 기회에 밥을 산다든지 해서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만약 일본인이 더치페이 하자고 말한다면 굳이 자신이 다 계산하겠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정 마음이 불편하다면 상대방보다 많이 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심적인 부담은 별로 느끼지 않고 호의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생일이나 시험 합격 같은 기쁜 일이 있으면 그 당사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을 내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자신의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당사자에게 축하의 의미로 식사 등을 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약간 다르다.
참고로 ‘割り勘’은 한국어로는 ‘더치페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일본에서도 예전에는 ‘ダッチペイ’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표현은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