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은 자각과 분투로 정복하는 자유의 고원이다.

일본 문화/한일문화

조상을 섬기는 마음, お盆

rouman 2007. 5. 2. 21:15
 
■ 임우진
秋田県 현청 근무 국제교류원

절 안에 조성되어 있는 묘지.
お盆이 되면 이곳을 찾아 성묘를
하는 가족들이 많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더니,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마쓰리와 불꽃놀이로 떠들썩했던 8월 후인 데다가, 곧 있으면 한국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즐거운 추석이 다가오기 때문인지, 향수병이 도지는 것 같다.
일본에도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お盆’이라는 명절이 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1년에 한 번 이승에 있는 집을 찾아오는 날이라 하여,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음식과 꽃을 올리고 성묘를 하는 날이다. 원래 お盆의 시기는 음력 7월 15일이었는데, 메이지유신(1868년)으로 음력이 폐지되고 양력이 주로 쓰이면서 お盆도 점차 양력 8월 중순 무렵으로 정착되었다. 정확한 날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대개 8월 13일에서 16일 사이가 된다. お盆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여름휴가를 이 기간에 내고 귀성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이번에 일본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일본의 평범한 가정에서 お盆을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절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꽃과 음식을 들고 절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본인에게 お盆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친구에게 물었더니,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지. 큰 명절인 お正月(우리나라의 설날과 비슷함)와 お盆이 아니면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거의 없거든.”라고 했다. 일본에는 제사문화가 없어서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 우리나라보다 적다. 그래서 명절날이면 귀성행렬로 고속도로가 붐비고 신칸센이 만원이지만, 우리나라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お盆을 함께 보낸 친구의 가족들과
사진을 찍은 필자(뒷줄 왼쪽)
친구 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에서부터 사촌까지 많은 친지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에는 필자와 표준어로 대화를 하던 친구도 사촌들과는 정겨운 사투리를 구사하며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여자들은 ゆかた(여름용 기모노)를 차려입고 남자들은 성묘 도구를 챙겨 가족묘가 모셔져 있는 집 근처의 절로 お墓参り(성묘)를 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외국인인 나에게 ゆかた를 손수 입혀주셨고 아버지는 お盆 문화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시며 한국의 성묘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절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가족들은 비석 옆에 精霊馬를 올렸다. 精霊馬라는 것은 오이, 가지, 짚, 나무젓가락 등을 이용해서 동물인 말과 소의 모양을 만든 것으로(지역에 따라 쓰이는 재료는 조금씩 다르다), 조상의 영혼이 자손을 만나러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발이 빠른 말을 타고 오시고, 가시는 길에는 소를 타고 천천히 가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비석에 물을 끼얹은 다음, 촛불과 향을 피우고 준비해 간 꽃과 음식을 올렸다. 음식이라고 해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찰밥과 과일, 과자를 연꽃잎에 담은 것이었다. 그런 다음 가족들이 다함께 비석 앞에 서서 합장을 했다.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친구의 집에서는 매년 お盆 때마다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늘 함께 성묘를 갔으니 같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필자도 가족사진을 함께 찍게 해주셨다. 그날 밤은 달을 바라보며 밤이 깊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お盆의 정식명칭은 盂蘭盆会이다. 이는 범어 ‘ullambana’에서 유래된 것으로, 옛날 석가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죄를 지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7월 15일에 많은 승려들에게 공양을 하자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나 성불할 수 있었다는 중국의 고사로부터 유래한다. 이처럼 お盆은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행사로, 조상의 명복을 기원하며 음식을 장만해 조상의 영전이나 부처에게 공양을 올린다.
お盆 기간에 집안에 모시는
제단
お盆 기간에 행해지는 의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13일은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날이라고 해서 迎え盆이라고 한다. 이 날에는 묘지나 물가 등에 불을 피우는 迎え火로 조상의 영혼을 맞이한다. 옛날에는 이 불을 양초에 옮겨와 집안에 두기도 했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요즘은 盆提灯(お盆 기간에 대문 앞에 달아두는 등)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성묘를 하고 조상의 영혼을 집으로 모셔오면, 盆棚(お盆 기간 동안 집안에 모시는 제단)에 음식과 꽃 등을 공양한다. 음식은 보통 시중에 파는 お盆용 과일과 과자, 떡 등을 쓴다.
お盆 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밤늦게까지 춤사위가 벌어진다. 이것이 盆踊り인데, 남녀노소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추는 춤이다. 이 춤에 관해서는,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돌아오면서 즐거워서 추는 춤이라던가, 자손들이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추는 춤이라는 등 다양한 설이 있는데, 조상의 영혼을 반갑게 맞이하고 배웅하며 살아있는 자로서의 기쁨을 표현하는 춤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신앙적인 의미보다는 오락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도쿠시마현의 阿波踊り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 상품이 되어 이 춤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8월 15일 또는 16일의 送り盆에는 조상의 영혼이 다시 무사히 저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고 배웅하기 위해 집 앞이나 물가에서 불을 피운다. 이것을 送り火라고 한다. 등을 물에 띄워 보내는 灯籠流し, お盆의 공양물을 물에 띄워 보내는 精霊流し, 5개의 산에서 시차를 두고 대형 글자 모양으로 불을 지피는 大文字五山送り火 등, 일본 각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送り火가 행해진다. 한 여름 밤에 쏘아올리는 불꽃놀이도 送り火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お盆은 한국의 추석과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정성을 다해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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