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다. 일본의 TV에 「男は黙って◯◯ビール(남자는 말없이 ○○맥주)」라는 맥주 CF가 방영되고 있었다. CF에 나왔던 남자는 그다지 말도 하지 않았고 혼자 마시는 모습이 멋있어서 당시에 꽤 유행했던 말이다. 이를 본 한국인 친구가,
『이 광고, 재밌네. 한국에서는 이런 일 절대로 없을 거야. 한국인은 맥주를 마실 때 모두들 시끌벅적 떠들며 즐겁게 마시거든. 혼자서, 그것도 말없이 술을 마신다면 맛이 없을 거야.』
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분명 한국에서는 이런 CF를 본 적이 없다.
한국에 막 왔을 때에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생각하고 있는 것은 딱 부러지게 얘기하세요. 한국인은 딱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하는 조언을 받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말없이 조용히 있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沈黙は金(침묵은 금이다)」, 「あうんの呼吸(호흡 일치)」, 「ツーといえばカー(척하면 척하는 사이. 잘 통하는 사이)」 정도의 말로 대표될 듯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고가 침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Basso. K에 따르면 아리조나주의 서아파치족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꾸지람을 들었을 때, 사람이 죽었을 때는 침묵을 지키고, 이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을 넘긴다고 한다.
이 관습은 일본과 닮았다. 하지만 아즈마 쇼지(東照二)에 따르면 미국사회에 있어 침묵은 부정적인 의지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서아파치족으로서는 오해받기 십상이니 고생도 많을 것이다.
이처럼 침묵에 대한 사고방식은 나라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침묵은 금이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존재한다.
TV 드라마에 있어서도 일본의 드라마가 한국보다는 말없는 장면이 많은데, 시청자는 말이 아닌 등장인물의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내면을 관찰한다. 한편 한국의 드라마는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딱 부러지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 때문에 싸움이나 언쟁을 하는 장면도 많은데, 얌전해 보이는 미녀 배우가 갑자기 목청을 높이거나 싸움하는 것을 보고 몇 번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미국과 같이 한국도 침묵이 마이너스 의지 표명으로 쓰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도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일본의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대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일본 드라마는 등장인물이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도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자유롭게 헤아릴 수 있고, 한국 드라마와 같이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 점이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일본인은 길가에서 큰 소리로 싸우거나 드라마 내에서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말하는 한국인을 보고 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 질문하는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인은 솔직하게 말한다」는 인상을 가진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언제 어디서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령, 부모님이나 선생님, 연장자 앞에서는 그저 가만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사이토 이사무(齊藤勇)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부모에게 「화」를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한일 모두 침묵이 마이너스 의지 표명이라는 사고방식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TPO(시간, 장소,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본에서는 장례 시에 친척과 지인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죽은 이 앞에서 슬피 우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또한 일본인은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친해지기 전까지 침묵하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특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능숙하지 못하다. 이는 싸움을 피하려는 일본인의 가치관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신 가족에게는 「화」라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침묵에 관한 생각은 나라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