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범죄 | ||||
■ 이재호 京都大学 人間環境研究科에서 일본어학 및 이론언어학 박사과정 중 | ||||
![]() | ||||
고위층 간부의 비리, 불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 유괴, 살인, 방화, 교통사고 소식 등으로 인해 뉴스 보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에는 이들 고정 레퍼토리에 더해 나날이 그 수법이 교묘해지는 闇金業者(암시장 고리대금업자), 신종 사기범죄, 通り魔(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위해를 입히고 사라지는 사람) 같은 새로운 레퍼토리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잡한 오늘날의 사회상을 반영한듯 어두운 소식들이 줄지어 보도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지, 이들 대부분은 나와 같은 유학생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아니, 무관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수 주일 전에 일어난 한 사건을 통해 나의 생각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사건의 발단은 나의 대학교 이메일 주소로 날아온 한통의 메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메일의 첫머리는 이렇다. 「貴殿が利用した、インターネット・コンテンツ利用料が未だに確認できません。現在までに何度かお願いの連絡をしましたが、入金の確認が取れません。(귀하가 이용한 인터넷 컨텐츠 이용료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 차례 연락을 했습니다만 입금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내용이 더욱 가관이다. 「上記期限までに入金がない場合、断固たる態度で臨む所存です。メールアドレスから、プロバイダ・ISP業者に情報開示を依頼し、貴殿の住所、氏名、勤務先等を開示してもらいます。その上で、改めてご自宅・お勤め先に料金回収に当社の担当者が行くことになりますので、宜しくお願い致します。(상기 기간까지 입금하지 않을 경우, 단호한 태도로 임할 것입니다. 이메일 주소로부터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자에게 정보 명시를 의뢰하여 귀하의 주소, 성명, 근무처 등을 명시받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자택 또는 근무처로 요금 회수를 위해 당사의 담당자가 방문할 것이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글의 요지를 보니 나의 미납 사실을 나의 주변에 공개할 것이며 피해보상소송과 차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돈을 받겠다는 말이었다. 글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까지 있었다. 「これは最終的な督促であり、また、個々人のお客様に対応する事は物理的に不可能であるため、メール・お電話でのお問い合わせは受け付けておりません。(이것은 최종 독촉이며, 또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이메일 또는 전화를 통한 문의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신종 인터넷 사기의 또 다른 예가 있다. 「オレオレ詐欺(나 나 사기)」로 6월초에 보도된 이 사기 사건은 아들 또는 손자를 가장하여 무작위로 일반가정에 전화를 건 다음, 교통사고를 당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돈을 입금해 달라는 수법으로 금전을 탈취한 사건이다. 참고로 「オレオレ詐欺」의 オレ(俺)란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どちら様ですか(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전화를 건 상대가 「オレだよ、オレ(나야 나)」라는 응답을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발상 자체도 황당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東京都(도쿄도) 내에서만 이 사기로 인해 170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피해액 또한 6월 현재 무려 1억 3000만 엔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히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 범죄들은 과거와 달리 범죄의 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범죄의 피해자는 결코 돈이 많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이웃 집 아줌마, 아저씨, 심지어 외국인 유학생들까지 범죄의 1차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같은 무차별 범죄는 결코 금전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通り魔」다. 通り魔는 단순 강도와는 다르다. 한국에서도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通り魔의 무차별 살상은 요즘 들어 일본 매스컴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두 자리 수의 通り魔 사건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범인과 피해자간에 아무런 사전 관계가 없다는 점에 있다.
또한 通り魔 사건의 범인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범인은 결코 ホラー映画(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흉악한 인상의 変質者(변질자. 변태)가 아니며, 이웃 집 아줌마, 아저씨, 심지어 동네 아이들조차 한 순간에 通り魔의 범인으로 둔갑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들 범죄는 벌건 대낮에 대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범죄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전 갈취를 위해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며, 원한이 있어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살인 그 자체를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그 이유 아닌 동기를 보면 「社会から注目されたかった(사회로부터 주목받고 싶었다)」, 「自分もこの世も終わりにしたかった(나도 이 세상도 모두 끝내고 싶었다)」, 「刑務所に入りたかった(형무소에 들어가고 싶었다)」 등 모두 다 놀랄 만큼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범행은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나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通り魔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나가 장소에 관계없이 通り魔의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들을 억제할 뾰족한 대비책이나 수단도 없다. 그저 무관심이라는 고질병에 고통스러워하는 병든 사회의 현실을 원망할 뿐이다. 얼마 전 등교 길 전철역에서 본 광경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교복차림의 고등학생 4명이 전철역 플랫폼 바닥에 앉아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며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변의 어느 어른도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들을 제지할 용기가 없었으며 이런 나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늘날의 일본사회에 있어 비행에 대한 행동 양식은 분명히 변화했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면 비행이란 적어도 어른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이 기본이 지켜졌기에 흥미로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과거 일본사회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일본에는 怖いもの(무서운 것)를 대표하는 것으로 「地震(지진), 雷(번개), 火事(불)」와 함께 「親父(아버지)」를 꼽았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에는 「ひったくり(소매치기)」, ぼったくり(바가지)」와 함께 「おやじ狩り(아저씨 사냥. 청소년들이 퇴근길 직장인을 덮쳐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라는 새로운 범죄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풍속도는 親父가 설 자리를 잃은 오늘날의 일본사회를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감시 기능을 상실한 병든 일본사회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일본 문화 > 한일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것은 내 것 (0) | 2007.05.11 |
---|---|
당신은 강아지파(派)? 고양이파? (0) | 2007.05.11 |
일본의 흡연 사정 (0) | 2007.05.11 |
거절하는 방법의 차이 (0) | 2007.05.06 |
마음의 배리어프리 (0) | 2007.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