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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한일문화

心暖まる日本のお正月(훈훈한 일본의 정월)

rouman 2007. 5. 6. 01:46

心暖まる日本のお正月(훈훈한 일본의 정월)

 

■ 이재호
京都大学 人間環境研究科에서 일본어학 및 이론언어학 박사과정 중
  
△우리나라의 떡국과 비슷한
  お雑煮
おせち(설날에 먹는 전통 일본요리), お雑煮(국에 찹쌀떡을 넣어 만든 일본식 떡국), お年玉(세뱃돈. 일본에서는 따로 세배를 하지 않아도 받는다), 鏡餅(거울처럼 둥글고 납작하게 만든 떡. 크고 작은 두 개의 떡을 포개어 정월에 신에게 공양하거나 축일에 장식물로 쓴다), 門松(정월에 문 앞에 장식하는 소나무). 이것들은 모두 일본 가정의 설맞이 용품들로 반드시 준비하는 것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설날이 되면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신년을 자축하거나 다양한 행사를 즐긴다. 그런 만큼 설날은 모든 일본인들에게 큰 의미를 줄 뿐 아니라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일본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된다.
가족이 모이는 祝い事(경사)가 있을 때면 어머니의 손은 어김없이 분주해진다. 설날 또한 예외가 아닌데, 年末大掃除(연말 대청소. 일반 가정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에서도 매년 연말이 되면 대청소를 한다)를 비롯하여 おせち요리 준비 등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진다.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 그리고 이날을 장식하는 おせち 속에는 이들 어머니들에 대한 감사의 전통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설날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おせち이다. 보통 重箱(찬합)라 불리우는 용기에 4층 또는 5층으로 담겨지는 이 요리는 새해를 자축하기에 충분한 양과 질을 자랑한다.
おせち의 가장 큰 특징은 味付け(조미, 맛내기)가 아주 달다는 것. 언젠가 들은 이야기에 과거 일본에서 설탕은 일반 서민에게 있어 상당한 귀중품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의 중장년층에게 甘い食べ物(단 음식)는 ご馳走(귀한 음식. 맛있는 음식)라는 공식이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한국인이 일식에 대해 달다는 이미지를 가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참고로 일본인들은 스스로의 음식이 간장 맛이 강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정월에 신에게 공양하거나
축일이 있을 때 장식하는 鏡餅
おせち에는 田作(마른 멸치), 数の子(말린 청어알), 黒豆(검정 콩), 海老(새우), 昆布卷(말린 청어 등을 다시마로 싸서 연하게 찐 음식), 煮物(조림) 등이 공통 메뉴가 되며, 각 가정의 전통에 따라 적게는 10가지, 많게는 20가지 가량의 음식을 준비한다. 이 음식들은 보통 縁起物(운수를 가리는 음식)라 하며 그 하나하나에 고유의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田作는 풍작, 数の子는 자손 번창을 기원한다. 黒豆는 ꡐまめになること(부지런해라. 일본어에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놀이가 있는데, まめ는 콩이라는 의미와 함께 忠実<충실>라 표기하여 부지런하고 충실하다는 형용사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부지런히 자신의 일을 하라는 의미이다)ꡑ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海老는 장수를 의미한다.
おせち의 두번째 특징으로는 그 맛이 짙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설날은 神樣(신)를 집안에 모시는 날로서, 집안의 잡사를 삼가고 경건한 마음으로 神樣의 방문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 기간(1월 1일부터 5, 6일 정도) 중에는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전에 많은 요리를 준비한다. 이때 보존이 용이하도록 진하게 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おせち의 많은 양과 진한 맛에는 위와 같은 이유 외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유가 전해진다.
나는 매해 연말이 되면 설을 보내기 위해 심야버스를 타고 도쿄의 보증인 집에 간다. 여느 일본 가정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1월 1일 아침이 되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おせち와 お雑煮, 그리고 丸箸(층층나무로 끝을 둥글게 만든 일회용 젓가락)가 곁들여진 아침 식사가 준비된다. 그리고 ꡐ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설 인사. 직역하면 새해를 맞이하게 되어 축하드린다는 말이 된다)ꡑ라는 인사와 함께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한 해의 시작을 자축한다.
그런데 아침에 먹다 남은 おせち는 그날의 점심과 저녁에 그대로 이어진다. 海老에 鯛(도미), 数の子 등 평소 맛보기 힘든 고급 식재는 누가 보아도 분명한 ご馳走다. 그러나 이도 이틀, 사흘 날을 거듭할수록 상황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사흘째 저녁 가량엔 마치 입 안에 설탕을 물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기시작하는 것이다. 이 같은 착각은 나로 하여금 젓가락의 스피드를 떨어지게 만들며 어딘지 모를 어색한 표정을 짓게끔 한다.
이런 나를 염려한 탓인지 보증인 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새해 문앞을 장식하는 門松
ꡒおせちには、お正月だけは、女の人が働かなくてもいいように、味付けを濃くして、保存が効くように作ってるんです。昔の女の人は大変でしたからね。(설 요리는 설날만은 여자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맛을 진하게 만들어 보존이 용이하도록 만들었답니다. 옛날 여자들은 고생이 많았기 때문에 설날만은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거죠)ꡓ. おせち의 달고 짙은 특유의 조미법에는 1년 내내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배려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배려는 비단 おせち 뿐 아니라 丸箸라 불리우는 일회용 나무젓가락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식, 생일, 성년식 같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丸箸라 불리우는 양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사용한다. 丸箸는 한 해 동안 가족이 서로서로 원만하게 지내고 음식에 궁핍함 없이 한 해를 평안히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사용한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丸箸는 반드시 箸袋(젓가락 봉지)라 불리는 것에 들어 있다. 이 箸袋의 상단에는 경축을 뜻하는 壽(축하, 경축)라는 글자와 함께 특이한 표시를 하는데, 바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이의 이름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일회용 나무젓가락마다 이름표를 다는 격이다. 이들은 무슨 이유에서 이름을 적는 것일까. 쓰고 버리면 그만일 텐데.
일본의 설 풍속의 하나로 설날이 되면 각 가정의 가장 즉, 아버지들은 붓으로 箸袋에 정성을 담아 가족의 이름을 적는다. 식구간에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그 일차적인 의미이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뜻이 있다. 설기간 중에는 매 식사마다 젓가락을 씻는 번거로움을 피한다는 것이다(단, 간단히 물에 헹구는 정도의 세척은 한다).
나도 처음엔 음식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회용 젓가락을 보고 상당히 당황한 기억이 있다. 사실 불결한 느낌마저 들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 배경엔 1년간 고생하는 어머니들에 대한 훈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모여 새해를 경축하고 신을 집안에 모시는 경건한 마음자세도 엿볼 수 있는 お正月. 이 날을 장식하는 お正月의 진한 양념과 다소 불결한 느낌마저 드는 일회용 젓가락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고생하는 그네들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문화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