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언어유희 일본의 성(性), 그 두 가지 모습 |
■ 이재호
京都大学 人間環境研究科에서 일본어학 및 이론언어학 박사과정 중(2003.11.)
![]() |
![]() |
△ 우리나라의 전화방과 같은「テレ クラ」와 남자 손님과 여성이 가상의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환락업소 「イメ ージクラブ」. 도심의 골목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들 환락업소는 낮 시간에도 영업을 한다. |
우리 한국인의 고정관념 속에 존재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친절과 성실로 대변되는 긍정적 측면이 강하지만 부정적인 부분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성개방국 일본이다. 좋게 말하면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를 가진 나라, 나쁘게 말하면 풍기가 문란한 나라가 될 것 같다. 사실 일본을 둘러싼 우리의 고정관념에는 한일 양국에 문제가 있다. 먼저 우리 측의 문제로 유교적 가치관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성문화가 문란한 인상을 받는 것은 결코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왜 일본만이 유독 그런 나라로 인식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분명 일본 측의 문제가 관여한다.
아니 땐 굴뚝에 왜 연기가 나겠는가! 오늘의 일본 사회는 풍기문란 국가로서 충분한 물증을 제시한다. 일본 전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증거, <하나> 중심가 한복판에서 대낮부터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風俗店(풍속점. 환락 업소)과 ラブホテル(러브호텔), <둘> 거리 곳곳에 나도는 ピンクチラシ(도색 전단지), <셋> 주택가 비디오가게에 즐비하게 꽂혀 있는 AV(adult video). <넷> 편의점에 무방비로 펼쳐진 음란잡지. 그리고 이와 같은 물증과 함께 해외로 수출된 일본어의 존재 또한 한몫하였다.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여고생의 援助交際(원조교제), 일본의 포르노 만화를 가리키는 HENTAI(変態. 변태) 등등, 차마 나열하기조차 민망스러운 많은 증거들이 「일본=성적으로 문란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을 형성시킨 것이다.
나의 유학 초창기 시절, 18살 미성년자의 눈에 비친 일본의 모습은 소문 이상으로 화려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만난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성적으로 문란한 나라」라는 대외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인지는 물론이며 이를 문제시 조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개방된 성문화의 모든 부분이 위와 같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일본의 개방된 성문화 또한 一長一短(일장일단)이 있다. 무엇보다 일본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일본의 성문화를 위의 가시적 부분만을 근거로 일방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그다지 공정한 것이 아니다.
위의 몇몇 사례에서 우리는 일본 성문화의 一短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아왔다. 그럼 과연 이들의 성문화에도 一長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을까. 물론이다. 일본 성문화의 一長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개방을 두 가지 의미로 확장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의미가 가시적 부분에 근거하여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두 번째 의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인 만큼 다소 관념적 이해를 요구한다. 그럼 일본의 개방된 성문화가 전하는 두번째 의미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의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 |
△ 일본의 거리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명함 크기의 「ピンクチラシ (도색 전단지)」 |
우선 이 두번째 의미를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男色(남색)」가 아닐까 싶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는 한국을 포함한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결코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남색을 일부 공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미지역의 현실에 비하면 일본 역시 남색의 인권은 그다지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 자신의, 한국인적 시각에서 본다면 일본의 남색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상당히 관용적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의 TV 프로그램 몇 가지만 보더라도 당장 느낄 수 있다. 90년대 ゲイ(게이)역을 맡았던 한 二枚目俳優(미남 배우)의 충격적인 키스신과 베드신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日本テレビ계열 드라마 「同窓會(동창회)」, 여기에 일본의 TV, 특히 バラエティー番組(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おかま(남색. 남창)는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 있으며, 나아가 핵심 요소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일본 남색의 현주소를 반영하듯 요즘 일본에서는 カミングアウト(coming-out. 커밍아웃)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カミングアウト란 원래 여성이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외래어로 유입되면서 자신만의 비밀을 고백하는 것을 이르는 표현이 되었고, 최근에는 매스컴을 중심으로 스스로가 남색 또는 여색이라는 것을 공표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무슨 이유에서 カミングアウト를 하는 것일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공표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는 カミングアウト를 통해 자신의 セクシュアリティ(sexuality. 성별. 성징)를 주변의 가족, 동료, 친구, 그리고 애인 등에게 솔직히 고백해 이해를 구함과 동시에 배려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カミングアウト의 성립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중 주목할만한 움직임 몇 가지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다.
먼저 일본에서 남색, 여색의 찬반 시비가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테마가 있다. 그것은 性同一性障害(성 동일성 장애) 즉, GID(Gender Identity Disorder)이다. GID란 출생과 함께 가지고 나온 생물학적 의미의 성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이와 동시에 극도의 위화감을 동반하는 장애를 말한다. 따라서 이는 동성애와는 구별된다. 아니 구별되어야만 한다(참고로 약 5만 명당 1명꼴로 이 GID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는 뇌가 인식하는 성과 신체의 성이 일치하지 않아 양자의 동일성(同一性)에 장애가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 |
△ 주택가에 설치된 AV(성인 비디오) 자판기 |
그러나 학회 관계자, 의료 담당자, 그리고 인권 운동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바꿔나가고자 봉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의 피땀 어린 계몽활동의 결과, 오늘날 GID를 둘러싼 환경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오늘의 일본사회에서는 GID와 동성애를 혼동하는 일이 사라져가고 있다. 동성애는 애정의 대상이 어느 쪽인가를 문제시하는데 반해, GID는 애정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쾌감 내지는 혐오감으로 인해 일어나는 장애의 하나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덕분에 마음과 신체의 불일치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성전환 수술을 시술하여 구제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는 인식 또한 서서히 동의를 얻고 있으며 미흡하나마 몇몇 관련 제도가 정비되기도 하였다. 또한 性同一性障害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인식됨에 따라 이들의 사회적 위치도 변화하였다. 소위 변태로 대변되는 반사회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두 가지 뉴스가 있다. 그 첫번째 뉴스는 올해 4월 27일 실시된 통일지방선거장에서 일어났다. 이날 선거의 한 여성 입후보자가 스스로가 의료기관 공인의 GID라는 사실을 カミングアウト한 후 공식 입후보를 표명하여 화제를 모은 것이다. 그녀(생물학적으로는 남성)는 스스로가 GID라는 핸디를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워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性同一性障害の当事者の問題だけでなく、私たちと同じような国や自治体に声や思いが届かず、苦しんでいる人たちの触媒として働きたい。(성 동일성 장애 당사자의 문제뿐 아니라, 저와 같이 정부나 자치단체에 목소리와 마음이 전달되지 않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촉매제로서 일하고 싶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녀는 도쿄도의 구의원으로 당선되어 여성 구의원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가 쟁취한 이날의 쾌거는 약자만이 대변할 수 있는 약자의 목소리, 약자의 입장을 경험한 장본인만이 전할 수 있는 꾸밈없는 목소리가 유권자의 찬동을 얻은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이날의 뉴스는 우리에게 GID를 둘러싼 일본의 성숙된 시민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두번째 뉴스는 올해 들어 도쿄 고가네이시(小金井市)와 사이타마현(埼玉県) 소카시(草加市)를 필두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작지만 중요한 변화에 관한 것으로, 印鑑登録證明書(인감등록증)를 비롯한 각종 공문서에서 성별란을 삭제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성별란의 존재가 때때로 차별의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여 해결하려는 일본 자치단체의 노력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성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이야말로 지금의 우리 그리고 이 시대가 고민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문화 > 한일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心暖まる日本のお正月(훈훈한 일본의 정월) (0) | 2007.05.06 |
---|---|
서로 다른 한일의 あいづち 행동 (0) | 2007.05.06 |
당신은 일본어를 좋아합니까 (0) | 2007.05.06 |
한국과 일본의 호칭 차이 (0) | 2007.05.02 |
한국과 일본의 선물에 대한 고찰 (0) | 2007.05.02 |